(2) 읽 기/마음에 담은 글들

이 세상을 떠나며

공만타 2009. 4. 25. 21:05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살다보니 많은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 원래대로 해 놓고 내 자리로 돌아가려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일 뿐 나는 돌아갈 수 있으나 내가 만든 인연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짐을 여러분께 남겨놓고 갑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용서하십시오.

 

까까머리 중3때, 세상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로부터 애늙은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20대,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뛰고 부딪혔습니다.
30대,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40대, 문득 정신 차려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날을 되새겼고 밤새워 살아가는 의미도 찾아보았습니다.
50대,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60대, 혼탁해지는 눈을 씻고 사물을 보았습니다. 멍해지는 귀를 후비고 진리의 소리를 들으려 귀 기울였습니다.
70대, 나의 생각을 세상에 맞추었습니다. 아니 세상 모든 것이 나였습니다.
80대, 될 수 있으면 소리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표시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합니다.  (+)의 세상을 살아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슴이 떨립니다. 나도 모르게 혹시 순백의 이 세상에 내가 (-)의 검은 발자국을 남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부디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이 사람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다만 그 사람이 미련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그 사람이 정확한 길을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합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추운 황량한 겨울날 대흥동 거리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대와 보낸 날들은 봄과 여름과 가을뿐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또다시 겨울인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따뜻한 날을 보낸 것처럼 그대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다 나의 잘 못입니다. 당신은 잘못할 수 없는 성품을 지녔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나도 세상 사람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당신을 알려고 노력해 왔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 딸에게 전한다.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 나와 너희 어머니의 바람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기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바람. 혼자 하는 기쁨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기쁨, 부자라서 기쁨이 아닌 행복해서의 기쁨. 남들이 알아줘서 기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는 기쁨. 그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이 세상을 나의 아들과 딸로서 그렇게 살아줘서 더욱 고맙다.   
       
그리고 조카, 손자들 보아라. 우리 집안은 예로부터 우애를 최고로 하였다. 혼자 힘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듯 살아가든 것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지는 것이다. 주위에 보듬어 안고가야 하는 친족들이 있다는 것을 항시 되새기며 화목하게 살길 바란다. 그리고 이왕이면 집안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주어진 현실을 탓하지 말고 자기를 가다듬고 노력하여 이 집안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여라.

 

먼저 간 친구!  그리고, 남은 친구들!  먼저 간 친구들에게 말하네. 자네들을 차례차례 보내고 세상의 덧없음을 한 잔 술과 함께 마셨었지.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네. 그리 걱정을 안 하여도 세상은 평온하다네.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술 한병 들고 놀러  갈테니. 그리고 남은 친구들. 너무 섭섭해 하지 말게. 자네들과의 추억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네. 철부지들이 몰려다니며 나쁜 짓도 많이 했지. 그러나 우리들은 항시 친구들을 생각했었지. 그 날 늦은 오후 사과서리를 하던 날. 해석이가 걸렸었나. 용식이가 걸렸었나. 한 놈이 안 오길래 잡혔구나 생각하고. 친구들 전부 잘못을 빌러 갔었지. 과수원 주인 아저씨의 단단한 훈계를 듣고 늦게 서야 집에 올 수 있었지. 담임선생님에게 알린다고 하여 얼마나 싹싹 빌었나.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우스운지. 그리고, 냇가에서 멱 감고 천렵하며, 수박 ․ 참외 서리한 그 숱한 여름날. 그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네. 그 보석들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니 자네들 슬퍼하지 말게. 잘 계시게.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모두 한자리에 모이세. 덕훈이! 자네의 무너지는 어깨를 못 잡아줘서 미안하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바라보기만 했네. 친구! 그러나 사랑하네. 우리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듯이 자네도 나의 마음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자네의 행복을 비네. 내가 자네 좋아하는 맥주 사줄테니 조금 있다가 따라오세. 그때는 시원하게 한번 웃어보세.  

 

우리는 동 시대를 살아가면서 같은 일을 하면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내가 선배님들에게서 일을 배웠고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한 직장이라는 배를 타고 같이 항해하면서 항구마다 타고 내리고, 이제는 내가 내릴 차례입니다. 직장 생활을 같이한 동료 여러분! 즐거웠습니다. 이다음 항해에서 혹 내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사람 구름같이, 물과 같이 소리 없이 흘러왔다 그렇게 갔다고 말해주십시오. 어떻게 생긴 사람이냐고 또 혹시 물으시면 그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는데 내가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렇게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속으로는 그 사람 별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나와 보탬을 주고 갔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다시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 정신없이 태어났지만 갈 때는 제 정신을 가지고 가길 원합니다. 그러니 조용하게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부고를 알릴 사람들 명단을 작성해 놨으니 그 사람들에게만 알리십시오. 그리고 부조는 절대 받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울지 마십시오. 조용히 같이했던 좋은 기억만 생각해 주십시오. 애들이 혹 울면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니들 아버지가 우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시오. 모든 장례용품은 최고 싼 것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염을 할 때는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염할 때의 나는 내가 아니니 심려할 것 없습니다. 내가 남긴 찌꺼기는 깨끗이 화장을 해서 조상님들의 혼이 서린 신곡리 선영아래에 안치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생각날 때는 애들하고 같이 서해바다를 보러 오십시오. 가능하면 따뜻한 봄날 오십시오. 저 멀리서 따듯한 햇살이 비치면 그 햇살 중 일부가 나 일 것입니다. 갈매기 한 마리 휙 하고 어깨 위를 지나갔다면 그 것이 나 일 겁니다. 항시 생각하고 바라볼 터이니 외로워 안 해도 됩니다.

이제 갑니다. 나 때문에 생긴 인연. 훌훌 털어버리고 싶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다 할 수 없는 것. 나의 몫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남겨놓고 갑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만큼 저 세상에서는 새로 나타납니다. 죽음은 또 하나의 탄생 !

절대 슬퍼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 사람 그랬지. 가끔가다 생각만 해 주십시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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