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혐을 무릅쓰고 약속장소에 나가 결국 일경에 체포되었다는 도산선생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 처음 접하였다. 이런 정도로 도산선생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살아오다가 도산 선생의 평전을 읽게되었다. 사실 한달전에 모 신문의 책 광고란에서 보고 시간이 나면 언제 읽어보아야 되겠다 생각하고선 메모수첩에 적어놓았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 일요일 서점에서 우연히 이런 사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서점에서 다른 책을 하나 골라서 나오다가 문득 '오랫만에 서점에 들렀는대 한 권만 사기가 좀 아깝다. 볼만한 다른 책은 없을까'하고 서점을 쭉 둘러보다가 마침 이책이 눈에 띄였고 메모수첩에 적어놓은 사실이 떠올랐다. 이렇게 인연이되어 읽게 된 책이다.
나라가 어려웠을 때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오로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그러나 많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외관상의 허명에 속지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외관 뒤에 숨어진 진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누구나 이 나이가 되면 아는 내용일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는 베이컨의 경험론만을 의지하고, 주먹교를 믿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을 모르고 독단에 빠졌는 지는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성격은 다혈질에 주어진 일을 끝장을 보아야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독선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의 주관에 의해 세상사를 평가하는 독단에 빠지는 오류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일제 치하 36년간 얼마나 많은 독립투사들과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바쁜 생활에 묻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간도 독립군들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핑계로 양민들의 마을을 불질러 없애고 불쌍한 우리 민족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일본 제국주의자들.. 잊을 수 없는 일이며 절대 잊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불타는 초가집을 뒤로 하고 그들에 의해 한 팔이 잘려나고, 나머지 팔마저 잘려나갔지만 의연히 두다리로 서있고 상투튼 머리에 흰 옷을 입고 서 있던 이름 모를 조상님의 사진 한장. 그 분은 당시 이름없는 민초의 한분이었지만 세상의 무엇도 두렵지 않으며 너희 왜놈들이 나의 양팔을 자르고 그것도 모자라 양다리를 자르더라도 우리 조선의 혼을 꺽지는 못한다는 멧시지 전하는 소리를 나는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시절에 들었다.
그 이후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책으로 들으며 나 또한 묵묵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하고, 이왕이면 더한 보탬이 되기 위해 나의 그릇을 크게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게으름에 빠져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젊음을 바쳐 세월을 많이 소모했다. 이제는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을 할 때이다.
이런 시점에 도산 선생을 만났다. 책은 감옥생활에 햇살을 비쳐주는 창이다. 마치 천둥벌거숭이 처럼 세상을 되는대로 살다가 문화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어둠에서 나을 이끌어 주셨다. 도산 선생은 민초였다. 권위가 있음에 주장한 적 없으며, 능력이 있음에 그 능력으로 사리를 취한 적 없으며, 16세부터 60세까지 44년간 일본, 미국, 만주, 중국, 러시아, 멕시코, 쿠바, 영국 등을 다니며 염원한 것은 오직 하나 민족의 자립, 나라의 독립이었다.
이름이라는 것이 헛되이 나지 않음을 몸소 실천하며 사신 본보기를 보았다. 단재 신채호 선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재 선생의 과격함을 가지셨지만 대의를 위해, 흩어져 있던 독립단체들을 통합하여 진정한 목소리를 내어 일제를 압박하고 열강의 자진적 도움을 얻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신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이룬 것 없이 조국해방 전에 병상에서 돌아가셨지만 도산 선생의 모습은 민초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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