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죽음, 죽음이 곧 새로운 삶'
- 어느 체첸군 지휘관의 말
체첸 수도 그로즈니는 황폐한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 밑에서 산다. 나는 파괴된 은행 건물 지하의 벙커에 체첸 전사들과 같이 있다. 곰팡내나고 눅눅한 곳이다. 장작을 때워서 온기를 주고, 등유 램프가 벽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수염이 덥수룩한 전사들은 무기를 정비하거나 기도하거나 비디오를 봤다. '쿵푸' 영화부터 케빈 코스트너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퍼펙트 월드'까지 있었다. 그들은 섹스 장면은 빨리 감아버리고 전투 장면은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다.
나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온 사진가였지만, 새로운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체첸어는 할 수 없었지만 1차 체첸전 때인 1996년에 몇달 동안 체첸에 있었다. 지금 나는 분리된 공화국의 반군 소탕을 위해 재차 침공한 러시아의 공세에 따라 체첸에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 러시아는 한발 한발 그로즈니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체첸을 떠난 한주뒤, 러시아는 체첸 제 2의 도시 구데르메스를 함락시켰다.)
그로즈니의 첫 밤은 1999년 10월 21일이었다. 핸드폰을 가진 3명의 러시아 기자와 같이 머물렀다. 그날 오전 러시아군 미사일이 그로즈니 시장에 날아왔다. 적어도 `140명이 죽었다. 자연히 벙커의 분위기는 경직되었다. (체첸인들은 러시아 기자를 첩자로 의심했다.) 우리는 보드카와 소시지, 대마가 널부러져 있는 탁자에 앉았다. 모든 사람이 제각각 먹고 마셨지만 아무도 건배 제의는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술취한 러시아인과 체첸 전사 사이에 싸움이 낫고, 체첸인은 2차대전 때의 독일 루거 권총을 꺼내 휘둘렀다. 서로 주먹이 오고갔고 사람들이 뜯어 말렸다.
밤에 체첸인들은 잠꼬대를 하였다. '알라 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시다)' 였다. 낮에는 내가 잠시만 벙커를 나와도 항시 경호원이 따라다녔다. 러시아의 폭격 속에 나는 납치의 주요 타겟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사람 - 심지어 체첸인들 조차도- 납치의 위험이 있었지만, 미국인이나 유럽인은 그 몸값이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선이었다. 우리는 짙게 썬틴한 파란 BMW를 타고 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그로즈니 시내를 달렸다. 전사들에게 당시 인기있는 노래는 미국 가수 세어의 '빌리브' 였다. 그들은 내가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잠깐 멈췄다.
체첸인을 검문하는 러시아군. 어깨에 굵은 살이 박힐 경우 총을 맨 흔적으로 보고 반군으로 심문하였다.
아슬란 벡이라는 체첸 지휘관이 그로즈니 시내의 내 주요 보호자였다.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1차 체첸전 당시의 인연을 상기하며 그를 찾았다. 나는 무장한 전사들과 같이 기자로서 목적지까지 접근하였다.. 그리고 밤에 RPG와 중화기를 말에 싣고 러시아군 경계선을 넘었다. 아슬란 벡은 '밀수품' 중에 미국인 사진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 뒤로 4주 동안, 아슬란 벡의 부하들은 나와 함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벙커에 있기 전에는 시내의 한 고아원에 있었다. (독일 기자들이 돌봐주던 고아들은 내가 있는 동안 우크라이나로 보내졌다.) 그곳은 러시아 미사일이 때리기 전까지 그로즈니 시장 안에 있었다. 첫번째 미사일이 날아왔을 때 고아원 창문들이 박살났다. 나는 윗층에서 내려와 코너에 갔다. 두번째 미사일이 날아왔을 때, 나는 문으로 갔지만 밖에서 잠겨있었다. 다행히 누군가가 와서 나를 꺼내줬다. 벽에 걸린 시계의 미키마우스 손은 5시 11분을 가리킨 채 멈춰있었다.
가끔 나의 경호원들은 그로즈니 교외의 마을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가는 곳곳마다 러시아의 폭격을 받았다. 아르군을 들렀을 때 학교, 집, 공터 가리지 않고 폭탄이 떨어졌다. 서전 유르트에 들렀을 때는 불과 몇분 전에 러시아군이 폭격하였다. 벽돌 더미 속에 죽은 토끼, 닭, 소들이 나왔다. 나는 죽은 누이를 안고 있는 남자를 찍었다. 그의 슬픔은 진정되지 않았고, 내가 사진을 찍자마자 그는 오열하며 죽은 누이를 담요에 쌓았다.
한 체첸 지휘관은 자신들의 땅을 이렇게 평했다. "삶이 곧 죽음, 죽음이 곧 새로운 삶" 이 곳은 사람을 울적하게 만드는 곳이다. 러시아인들은 테러리스트를 공격한다 하지만, 체첸인들은 나에게 죽은 자와 불구가 된 자들을 보여줬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테러리스트인가?" 물론 러시아인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머물러 있는 동안, 러시아는 서쪽 잉구세티야와의 국경을 봉쇄했다. 나는 내가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슬란 벡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깊은 밤에 두 건물 속에 그와 머물렀다. 우리는 닭을 먹고 그는 무전을 하였고, 러시아군의 폭격이 어느 지점을 타격하는 지 알아내려 하였다. 우리는 거의 열차 소리에 가까운 굉음을 들었다. 러시아군이 체첸인들을 겁주기 위해 내는 소리라고 한다. 부하들이 창고에서 스팅거 미사일과 RPG를 꺼내 차에 싣는 동안, 아슬란 벡은 나에게 '퍼펙트 월드' 를 봤냐고 물었다. 그는 그 영화를 좋아했다.
체첸 난민 수용소의 어린애
아슬란 벡은 다른 기자를 체첸 밖으로 인도하려는 다른 지휘관에게 나를 안내하였고, 그 지휘관은 우리를 그루지아 쪽으로 국경을 넘도록 하였다. 경호원들과 우리는 렉서스 차에 같이 탔다. 이동 중에 러시아 공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2시에 이동하였다. 비가 쏟아졌고, 차는 길가를 달리면서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몰랐던 체첸인들에 의해 경적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새벽 5시에 그루지아로 향한 좁은 산길의 국경에 도착하였다. 국경을 넘으면서, 우리는 피난가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지나쳤다. 사실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나의 집은 내가 가는 앞에 있지만, 그들의 집은 그들이 가는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Life Behind The Rebel Lines
A Newsweek Photographer Spends Four Weeks In Chechnya, Documenting A Ragtag Army's Battle Against The Russians. Here Is His Story.
By Robert King | NEWS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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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늑대 시리즈도 어느 새 2차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게시글 올리는 게 쉽지 않아서 좀 시간이 걸리지만, 1999년도 러시아 2차 침공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뉴스위크 기사글을 번역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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